인생은 저 홀로 울며 사는 것이다


사람이란 힘든 것보다 편안함을 찾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편안함을 찾는 것은 스스로가 어느 정도 자신의 삶에 대하여 책임질 수 있을 때라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모자람을 채우는 과정에 있을 때는 가급적이면 편안함보다 힘든 것들을 이겨내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어려움들이 쌓여야만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갖춰지는 것이다.

사람이란 한번 편한 길을 가면 계속해서 편안한 쪽만 찾게 되어있다.

그래서 굳이 어려운 길을 이겨나가기보다는 돌아갈 생각부터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편안한 길 뒤에는 위험은 적을지라도 그로 인해 얻어지는 것 역시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땀 흘린 뒤 먹는 밥이 더 맛있듯이, 어려움을 이겨낸 뒤 얻는 소득 역시 크기 마련이다.

이처럼 일상의 삶에서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길러야,

언제 자신에게 닥칠지 모를 불행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아무리 큰 불행도 하나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럭저럭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큰 지진이 온 뒤 태풍이나 여진이 몰려오는 것처럼, 항상 큰 불행 뒤에는 유사한 불행이 겹쳐온다.

그래서 행복의 뒷자락에는 이처럼 불행이란 그림자가 숨어 늘 함께 살아가게 된다.

살다보면 갖고 싶은 것도 많지만 정말 버리고 싶은 것들도 많다.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은 것이나 버리고 싶은 것들도 어느새 뿌리를 내 삶 속에 깊숙이 내리고 있어 쉽지 않다.

잘못된 습관이나 부끄럽고 죄스러운 과거의 흔적들, 그리고 아픈 기억이나 상처들...

평소에는 세월 속에 자연스럽게 치유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치유된 것이 아니라 그저 이성의 울타리에서 잠들어 있을 뿐이다.

그렇게 인생은 저 홀로 울며 사는 것이다.

때로는 꺼이꺼이 목 놓아 눈물이 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도록 큰소리 내어 울어도 보고, 또 때로는 가슴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도 모자랄 정도로 고통스러운 속울음으로 울어야 한다.

누군가가 옆에 있어 위로가 되기를 바라지만, 정말 진정한 자신의 아픔은 타인의 위로로 씻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위로는 어쩔 수없이 늘 혼자의 몫이어야 한다.

속울음을 헤일 수조차 울고 울어 상처 입은 영혼을 저 홀로 달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항상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외로울 수밖에 없음은 이렇게 저 홀로 아파하고 또 그 아픔을 극복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도 나는 누군가에게서 위로를 받지 못하더라도, 나는 누군가의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비단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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