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정작 어떠한 삶이 행복한 것인지 자신의 삶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은 적다.

적어도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는 말은 어느 정도 삶을 살아 본 뒤에야 비로소 느끼는 것들이지 처음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운명과 숙명, 다르마나 카르마는 살면서 겪게 되는 일종의 삶에 대한 한계인지도 모른다. 

내가 존재함으로써 나의 세상과 삶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세상이란 공간에 나의 삶을 넣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름이 무엇이고, 가족은 누구이며, 가지고 있는 능력의 정도, 또는 생활 여건이나 환경은 어떠한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일의 선후나 자신이 원하는 미래에 대하여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선택은 가능한 한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해야 한다.

때로는 자신에 관련된 것조차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강요하기 전에, 자발적으로 선택을 먼저 선점하려는 노력을 해야, 자신의 삶에 의지를 덧씌울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삶에 떠밀리거나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최상의 방어라 할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갈을 선택하는 순간이 늘 새로운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시작은 나이와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시작점과 도착점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 누가 정해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출발점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 도착점은 그 일이나 행동을 통해 얻은 결과물에 대한 만족의 정도일 것이다.

무엇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요 결정이다.

그러므로 선택이나 결정은 곧 인생의 목표요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 목표와 지향점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먼저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앞으로 가고자 하는, 이루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 유혹에 빠지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을 돌아보면 모두가 능력이 탁월해서 그 위치에 서 있는 건 아니다.

어떤 때는 나보다 못한데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기도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팔방미인격의 능력보다 자신이 가고자하는 지향점을 향해 일로매진하는 노력의 결과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란다고 해서 다 가질 수 없기에, 스스로 가장 잘하는 능력을 인생의 지향점과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가능하면 살면서 매일매일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자신에게 절실하게 물어보았으면 싶다.

무엇을 채우거나 갖고 싶다면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매일 막연하게 <이랬으면 좋을 텐데>하는 희망만으로는 안 된다.

성공은 안 되는 것조차 넘어서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늘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생각 안에 머무는 사람보다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제자리에 서서 원하는 삶을 기다리기보다 삶을 향해 한발자국씩 조금일지라도 걸어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행복하지 않음을 탓하기보다는 스스로 먼저 행복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비단채

칼럼·단상·포토에세이·저널리스트 김진철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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