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도 세상의 일부다

2017:03:04 16: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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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은 때로는 용기를 주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커다란 부담감을 안겨준다

왜냐하면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의 대부분은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자신에게 속한 무엇인가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이 잘못되면 본인만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속한 무리 전체가 잘못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는 되는 것이다

혼자라면 설령 실패를 하고 손해를 봐도 혼자 손해를 보면 그만인데,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에 더욱 소심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곧 그 자리에 대한 자각이 먼저 있어야 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고, 어떤 의무와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인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 자리에 대한 책임감이 바로 그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처음 그 자리에 앉았을 때는 왠지 어색하게 보이는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변모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이 책임감을 느끼게 되면 능력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

물론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동안 부단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책임감이나 부담감은 모두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현실이라는 기준점에서 미래를 대비하여 느끼는 감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부자나 빈자나  아무리 일을 즐기는 사람이라도, 그 일에 대한 결과에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혹여 자신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지켜야 할 소중한 가족들이 불편을 겪거나 손해를  볼까봐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물론 그것은 사람마다 각자의 삶을 산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소중한 존재이기에 외면하지 못하고 가슴에 품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자리나 지위, 또는 성인이나 아버지, 남편과 아내라는 위치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얻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는 너무 책임감이나 부담감을 느끼지 말고,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것이 더 현명할 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임감은 평소보다는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더 많이 느끼는 것도 맞다.

자신이 조금 더 현명하게 처리했으면 위기를 자초하지 않았을 터인데 하는,

후회의 과정에서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벽할 수 없는 것도 또한 사람이기에 지금 자신이 머무는 자리에서 그저 최선을 다하면 그만일 것이다

거짓말과 사기가 통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욕심이다.

하지만, 욕심이 없는 사람과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런 거짓말과 사기에 속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치고 100%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진실 속에 거짓을 교묘하게 버무리고 부풀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스스로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분명 함께 어울려 놀고 똑같이 계산했음에도 집으로 돌아오면 왠지 자신이 손해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한다.

이처럼 세상을 보는 눈은 자신의 눈이고, 생각의 범위 역시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손해를 보는 인간관계이지만, 그래도 끈끈하게 이어지는 것은 바로 누구나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거짓말과 사기의 악순환을 견디는 것이 바로 세상살이의 처세일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과 사기도 허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범위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벗겨먹어도 최소한 먹고 살 길은 남겨둬야 하고,

둘째로, 욕은 할 수 있어도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 되며, 셋째로, 등쳐먹더라도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등쳐먹어서는 안 된다.

세상을 산다는 건 바로 이런 세상의 부조리를 어떻게 자신과 맞게 포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다시피 엄연히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힘 있는 자와 없는 자가 구별되는 것은 고금의 진리라 할 것이다.

어른이 되고서도 이러한 것을 모른다면 그 사람은 순진한 것이 아니라 바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어쩌면 자라는 자식에게도 옳은 것만 보여주기보다는 세상의 그릇된 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자신의 생각을 가르치는 것이 옳다.

굳이 역사를 언급하지 않아도 우린 알지 않는가?

어떤 사람은 몇 죄를 저지르고도 국경일만 되면 사면의 대상으로 입에 오르내리고 어떤 사람은 생계를 위해 빵 몇 개를 도둑질 했어도 감옥을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어둠 속에 사는 경우도 있음을 알 것이다.

그것은 바로 권력이나 돈의 속성을 알고 모르는 것의 차이요, 세상에 속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일 것이다.

이처럼 부정(不正)도 세상의 일부다.

너무 맑은 물에 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격언처럼, 홀로 고고한 척 너무 부정을 외면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상부상조는 좋은 것만 나누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서로가 적당히 이용하고 이용당하면서 사는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란 말처럼 알고도 속아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세상을 긍정의 눈으로 바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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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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