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음을 기억한다면



나는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어차피 그 돈을 쓰면서도 이것저것 잡생각이 많아 기분 좋게 쓰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돈을 쓰더라도 낯도 나고 기분 좋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돈이 없어서 아니면 쓰기 싫어서도 아니면서 나도 모르게 계산적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만나는 그런 못난 사람 말이다.

왜 그리도 얄팍하게 변해버렸을까?

누군가에게 배신당했거나 실망한 경험이 많아서 그럴까?

돈을 써야 할 순간이 오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고 움츠려들어 선뜻 먼저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같은 돈을 쓰면서도 남 보기에 초라하게 비춰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얄팍하다는 의미는 하는 짓이 속이 뻔히 들어다 보이는 행동이나 말을 뜻한다.

한마디로 남에게는 박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이중적인 잣대로, 속 보이는 짓을 예사롭지 저지르는 것이다.

그 사람은 부모에게나 일가친척, 심지어 멀리 있는 지인들에게까지, 철따라 이 곳 특산물을 사 보내주는 성의를 보인다.

마치 당연하듯 하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부럽기조차 했었다.

그 사람을 통해 난 못난 나의 얄팍함을 보는 것이다.

예로부터 <돈은 거지같이 벌어 정승처럼 써야 한다.>고 했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나 모양새가 달리 보이기도 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 돈을 제대로 한번 써보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생각은 늘 이렇게 하면서도 막상 올바르게 돈을 쓸 상황에 처하면 선뜻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때로는 이런 후회들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솔직히 돈을 버는 이유는 쓸 데 쓰기 위해서가 아닌가?

돈은 나중을 생각하면 누구도 돈을 쉽게 쓰기 어렵다.

하지만 돈을 써야할 때는 과거나 미래가 아닌 바로 현재라는 것이다.

투자의 돈이 되었든 아니면 낭비가 되었든, 현재 어떻게 돈을 쓰느냐에 따라 미래도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얄팍함이 지나쳐 정작 씀으로 인해 장래 이득이 되는 것까지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쓰지 않아 생기는 마음의 빚보다 써서 얻는 가벼움이 더 좋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정을 강물처럼 멈춤 없이 서로에게 흘러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다가가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내가 먼저 붙잡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행복이나 즐거움은 감정의 흐름이기에 이런저런 이유나 핑계보다는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이러한 진실된 감정이 서로를 향해 움직일 때 우리는 더불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마음에 신세진 사람이 남아있다면, 이 연말연시에 진심어린 전화 한 통 메시지 한 줄 보내는 성의를 보여줘야 한다.

제발 마음으로 고마움을 대신하려는 생각일랑 버려라.

마음 대신 말로, 전화로, 아니면 편지나 방문을 통해 그 뜻을 보여주는 것이 옳을 것이다.

평생을 함께 살아도 마음을 알지 못해 서로 토닥거리는데 하물며 떨어져 사는 사람이 어찌 그 마음을 알겠는가?

고마워하고 감사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 바라는 것은 그저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음을 기억한다면, 기회가 주어졌을 때 놓치지 말고 바로바로 갚을 수 있도록 노력함이 옳다.

흔히들 우린 물질적인 빚에는 민감하나, 마음의 빚에 대해서는 너무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물질적인 빚이야 갚으면 그만이지만, 마음의 빚은 아무리 갚아도 그 끝이 없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한번 진 마음의 빚은 당사자에게 갚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갚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죽을 때까지 갚을 수 없는 것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렇게 마음의 빚이 남아 그리움이 되는 것일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번 연말에도 안부전화에 그치야 할 것 같다.

여전히 삼시세끼 다 먹고 더러 술도 마시는데 어쩌면 삶을 핑계로 자기합리화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삶이 힘들고 마음이 빡빡함에도 거짓으로 감사를 표하는 것은 그 또한 도리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연말이 되면 마냥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함보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먹먹해진다.

제발 다가오는 계사년에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모든 것이 슬슬 풀려갔으면 좋겠다.



비단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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