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걷는다



오늘도 걷는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 그저 걷는다.

숨이 차오르고 온 몸이 땀이 흘러 옷이 흥건해져도 마음만은 즐겁다.

모기가 달려들고 날 파리 떼의 날개소리가 쉼 없이 귓가에 윙윙거려도 걸음을 멈출 수 없다.

가파르고 미끄러운 길, 눈비가 내려 질척거리는 길, 울퉁불퉁한 바위 길, 굽이져 보이지 않는 길, 이 모두 나의 길이다. 

마냥 그 길을 따라 걷다가 힘들고 지치면 쉬어가면 그뿐이다.

예쁜 야생화가 핀 곳에서도 쉬고, 폭포가 떨어지는 맑은 물 흐르는 곳에서도 쉬고, 경치 좋은 낭떠러지기서도 쉬고, 시원한 바람결이 흐르는 골짜기에서도 쉬고, 그러다 울창한 숲 속 나무그루터기에 앉아서도 쉬고, 길 옆 우두커니 선 돌부리에 걸터앉아서도 쉰다.

그렇게 쉬어간들 누가 뭐라 할까? 

늘 바쁜 건 자신이지 세상이 아니다.

운명이든 숙명이든, 아니면 팔자이든 간에 나는 내게 보이는 그 길을 향해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가보지도 않고 어찌 그 길의 결말을 아는 것처럼 자신의 허물을 탓할 필요는 없다.

죽은 뒤에 지내는 거창한 제사보다 살아생전에 뜨거운 밥 한 숟가락 더 권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라는 말처럼 인생도 현실에서 얻는 즐거움이 바로 진정한 행복인 것이다.

그렇기에 내 삶을 남과 비교하거나 부러워할 필요는 없음이다.

작은 허물도 크게 보이는 것은 나의 자각일 뿐, 상대방 역시 내게 부러운 것이 있을 것이다.

어차피 모자란 것을 서로 나누고 채워주며 사는 것이 인생이지 않는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듯 살아가는 방법도 각자 다름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남에게 인정받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제는 매사 돌아가야 할 때가 더 많다.

때때로 서로 부딪쳐 당당하게 맞서 싸우고 싶지만 주변이나 가족을 돌아보면 그럴 수 없다.

솟아나는 화도 참아야 하고, 얼토당토 없는 황당한 말이나 하기 싫은 것들도, 자존심을 죽이고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젊었을 때 걷는 길은 늘 곧고 평평한 듯 거침없었지만, 이제는 나보다는 소중한 사람들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생의 길은 거칠고 황패하다.

그러나 걷기를 멈출 수는 없다.

피하거나 돌아갈지라도 결코 쓰러지면 안 된다.

젊어서는 넘어져도 쉽게 일어나 같은 길을 갈 수 있지만, 늙어갈수록 한번 넘어지면 같은 길을 다시 가기 어렵다.

생각이 젊어져야 몸도 젊어지지만 그렇다고 인생의 길도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살아있음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의지로 살 수 있어야 한다.

흔희들 늙으면 추억으로 산다고들 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우린 자신도 모르게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나가버린 젊은 날의 기억이 소중해지고, 자신보다 아이들의 장래를 염려하는 사람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 모두가 어쩜 아이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채워줄 수 없는 스스로의 한계를 자각해서일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지만, 자존심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의 안쓰러움일 것이다.

곁으로는 안 그런 척 하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면, 은연중 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외로움이란 같은 병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된다.

가족에 대한 불편함과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그 조차 가족들에게 속 시원히 표현하지 못하는 그 안타까움을 말이다.

그동안 스스로는 최선을 다했다 믿으면서도, 마음 한쪽에는 무엇인가 부족함을 채우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언제부터인가 우린 주변 사람들에게서 떠날 연습을 하는 것이다.

아마 스스로 늙어 감을 자각할수록 가족에 대한 소중함은 더 절실해지지 않나 싶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원수처럼 여겨질 정도의 가족도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가족은 삶의 원천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되돌아보면 우정이나 사랑처럼, 내 마음의 이해에 따라 수많은 인연이 삶이란 울타리에서 나와 함께 했을 것이다.

이미 죽어서 떠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더 이상 도움을 기대 수 없어 떠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추억 속에 남아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핸드폰에 저장된 수많은 전화전호의 주인공들이 있지만, 혹여 그 전화번호 역시 나의 체면을 위해 지우지 않는 것은 아닌지.

아마 스스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서로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도 있지만, 이미 기억에서조차 사라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늘 이렇게 빗속을 걷는 산행조차 미래의 건강한 삶을 위한 것이라 자위하지만,

한편으로는 늙어서 돌아볼 추억 만들기에 불과한 짓은 아닌지...




비단채

칼럼·단상·포토에세이·저널리스트 김진철 웹사이트

    이미지 맵

    단상 다른 글

    댓글 0

    *

    *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