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 속 세상에 형체 없이 존재하는 자화상이다


이젠 마음을 숨기고 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물안개를 헤치며 기암괴석이 언뜻언뜻 보이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만나도, 선뜻 감탄사를 내뱉지 못하리만치 감정을 숨기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도 당당하기 바라보면 안 되고 이성에게 조차 가벼운 농담이나 다돗거림이 성희롱이 될 수 있고, 마음을 담아 얘기한 말이 변질되어 다른 사람의 가슴에 못이 되어버리는 요즈음의 세태에선, 순수하고 착한 사람은 바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진다.

나는 그림 속 세상에 형체 없이 존재하는 자화상이다.

나 스스로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못하고 화가의 손에 의해 형상화되는 추상화에 불과하다.

아니, 실재로는 존재하나 가족이나 지인들의 작은 말 한마디에도 쉽게 뜻을 접어야 하는 꿈속에 사는 허상과 같은 존재다.

젊은 날은 모든 것을 가지려고 그렇게 아등바등 노력했고, 스스로 열정이 지나쳐 다투고, 깨지고, 그렇게 부셔져도 스스로에게는 부끄러움은 없었다.

그러나 이젠 포기가 일상처럼 익숙해졌고, 그리고 작은 이익일지라도 그것을 위해서는 자존심마저 팔아버리는 초라한 군상으로 남겨졌다

이제야 태생적 한계라는 것에 익숙하기도 하련만 아직도 그 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우물 안 개구리는 그 우물 속에서는 행복할 런지는 모르지만, 우물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본모습조차 지키지 못하고 세상에 휩쓸리다가 수구초심(首丘初心)처럼 늘 태어나고 자란곳을 되돌아보고 그리워 할 줄은 몰랐다.

나의 人生이 어느 날 일장춘몽(一場春夢)처럼 여행 뒤의 피로와도 같은 삶이 되어 있음을 잊고 살았다.

친구를 만나도, 지인을 만나도, 때로는 친척을 만나도 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있는 척, 아는 척, 많은 척, 가본 척, 그리고 친한 척...

뒤돌아서서 욕할 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발가벗은 모습을 보이면 무슨 탈이라도 난 것처럼, 스스로를 감추는 것에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 하고, 남의 사랑을 질투하고, 남이 잘되는 것에 배 아파하고, 남의 잘못을 꼬집기에는 익숙해도, 스스로의 작은 허물에도 인색하기에 남을 용서하고 배려하는 것에는 낯설어한다.

그러면서 마치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것처럼 모두에게 대우받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어린아이가 되었음을 모른다.

언제부터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에 익숙해지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노력도 없이, 자리와 작은 이익에만 연연하는 기성세대가 되었음을 잊고 살고 있다.

순수한 사랑을 외면하면서도 너무도 그 사랑을 절실하게 원하고 있음을...

부모나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항상 가슴속에 담고 살고 있으면서도 혹여 다가가면 자신에게 손해가 날까란 두려움에 빠져 외면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외면하고 모른척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자신의 몫임에도 우선 피하고 보는 습성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난 지금 어디까지 걸어온 걸까?

또 앞으로 얼마나 걸어가야 하는 걸까?

앞으로 내 가치가 변하고 또 얼마나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람을 잃어가면서 살게 될까?

이제 스스로 내게 익숙해진 거짓된 몸짓과, 거짓된 사랑과, 거짓된 행동으로부터 떨쳐 나와 나에게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비단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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