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라는 굴레



사람은 단 하루도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고 보낼 수는 없습니다.

가정에서도 가족과 함께고,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귀가하는 순간까지 수많은 사람과 만납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스쳐지는 사람으로, 또 어떤 사람은 이해관계로 만날 수도 있을 겁니다.

이처럼 인연은 직접적인 것과 간접적인 것을 포괄하는 불교의 윤회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인연은 꼭 윤회적인 의미가 아닐지라도, 한번 맺어진 인연은 대부분 일회성으로 끝나는 법이 없습니다.

인연의 출발점은 세상에 존재하면서부터이고, 인연의 종착점은 만남으로 귀결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만남을 통해 인연을 더 크고 아름답게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한편으로는 또 새로운  인연의 시작되기도 할 것입니다.

이처럼 인연은 새로운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우리들에게 슬픔과 기쁨이라는 양면의 감정을 알게 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인연 없이 혼자의 삶을 산다면 이처럼 다양하게 마음을 자극하는 감정의 의미를 어찌 알겠습니까?

그래서 아무리 힘든 고통이나 슬픔이라고 해서 평생의 슬픔이나 고통으로 남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와의 인연이 고통이 되지 않고 행복이 되려면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이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천성적으로 변화에 민감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습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연은 늘 사랑의 고통만큼 아프고 절실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만나서 아프고, 못 만나서 아프고, 그리워서 아프고 ,보고파서 아프고, 이렇게 인연의 기쁨은 슬픔에 가려 늘 마음 한 구석에 쌓여갑니다.

때로는 삶의 짐으로, 또 희망으로, 목표가 되고, 추억이 됩니다.

누군가의 가슴에 살며시 기대어 그 가슴이 울리는 심장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쿵쿵 울리는 그 소리가 바로 삶이 지르는 소리요, 누군가를 원하는 간절한 내 마음의 호소입니다.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기 위해 내 손을 가슴에 얹어 놓아야 하듯, 우린 인연으로 맺어진 누군가를 내 가슴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이요, 기대요, 간절함입니다.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한번 맺은 인연 역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되돌아 갈 수 있다 해도 가슴에 남은 추억마저 말끔히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어떤 이유에서라도 맺어진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고통만 남겨준 인연일지라도 그 인연으로 인해 그만큼 굳건하고 흔들림 없는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기쁜 신간들은 늘 빨리 지나가는 것 같고, 고통의 시간들은 늘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끼기 마련입니다.

이 모두가 온 몸으로 느끼는 인연의 굴레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번 맺은 인연의 굴레는 벗어던지려 애쓰기 보다는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사람은 행복했던 시간보다 슬프고 힘겨웠던 시간을 더 오래 기억합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추억을 나눈 인연보다 나쁜 인연들이 더 가슴 아프고 오래 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연이 행복보다는 굴레로 남게 되는 가 봅니다.

하지만 그 인연 때문에 지난 시간동안 삶을 삶처럼 살아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지난 인연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새롭게 다가올 인연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단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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