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면 못 견디는 존재가 사람인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못 견디는 존재가 사람인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편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숨을 쉬고 몸속의 피가 돌아다니듯 생각은 허황된 것이든 그렇지 않든 잠시라도 멈추지 않는다.

오늘 봄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있어 하루쯤은 편히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할 일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흔히들 <마음이 편한 것이 진짜 편한 것>이라 여기는 것 같다.

이와 같이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결국 마음이 즐거워야 한다.

사람은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순리란 무엇인가?  순리란 결국 세상의 이치대로 사는 것이다.

순리대로 사는 것이 행복의 보증수표는 분명하지만 사람은 결코 순리대로 살 수 없는 존재다.

그것은 사람에게는 욕망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것을 극히 싫어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타인이 간섭하거나 방해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처럼 행복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욕망을 충족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날은 가진 것들을 모두 주고플 정도로 정이 솟지만,

또 어떤 날은 옆에 있는 것조차 싫어질 때도 있고,

같은 음악이라도 어떤 날은 감정을 후벼 파듯 절절해질 때도 있는 반면,

또 어떤 날은 그저 짜증스러운 소음에 불과할 때가 있다.

하루에도 수시로 기분의 변화에 따라 마음이나 하고 싶은 일도 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행복이라는 것도 결국 기분에 의해 좌우되는 감정의 변화가 아닐까 싶다.

학창시절 방학 때면 생활계획표 하나 안 만들어 본 사람이 없듯이, 순리로 얻어지는 행복은 의외로 그리 크지 않다.

따라서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사느냐는 목적의식으로 사는 것보다는,

오늘 느끼는 즐거운 하루의 삶이 더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의 즐거움이 쌓여 보다 큰 즐거움을 주는 것 역시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랑을 줘도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받아들여야 성립되듯이 행복이란 것도 스스로 느껴야하는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이 지난 뒤 지난 고생들이 그래도 행복이었음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때문에 잠시의 서운함이라든가 원망의 감정들이 가슴에 쌓이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원망이나 서운함이 쌓여 정작 삶에서 느껴야하는 즐거움들을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때때로 누군가에 대한 간절함이라든가 그리움이란 감정이 소중한 것은 바로 그것들이 나의 행복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비단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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