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라 해도 사랑은 특별해야 합니다


누가 뭐라 해도 사랑은 특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오직 한사람에게 향하는 마음의 쏠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단지 이성이기에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라 사랑하는 동안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마음이나 행동은 모든 것들로부터 우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하는 사랑이지만 사랑하는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사랑만큼 특별한 것 또한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청춘들의 사랑은 왠지 인스턴트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저울질하는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감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에 쫓기어 멀어지는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핑계이고 멀어지기 위한 수순밝기에 불과합니다.

내 것을 나누지 않고 내 것을 희생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란 말을 붙이기조차 부끄러운 일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사랑에 색깔을 입히는 것은 대부분 여자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없던 배려심도 생기는 법이라, 대부분 여자가 사랑의 여정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사랑을 유지하고 어떤 사랑을 하는가는 여자의 선택에 의한 결정되어지고는 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여자의 힘이 득세하는 현실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미남미녀의 사랑이 아니면 사랑 취급도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혼하여 살아보면 알게 됩니다.

남녀 간의 사랑, 참 별 것 없다는 사실을요.

남녀 간의 사랑은 어쩌면 깨지기 쉬운 유리잔과 같아,

아주 작은 트러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함께 있으면 사랑이 그만큼 더 깊어져야하는데 실재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만큼, 익숙해진 만큼 사랑 역시도 얕아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아이가 태어나면,

영원할 것 같은 남녀 간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서로에 대한 관심이 자식으로 향하는 크기만큼,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작아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된 뒤 남겨진 사람에게 있어,

젊었을 때의 사랑은 그저 추억이고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 뿐이랍니다.

젊은 날 자신의 생명과 인생을 송두리 채 던진 사랑임에도,

그 때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덤덤하게 느껴집니다.

단지 세월이 지나 감정이 무디어졌다는 핑계를 대기에는 내 사랑이 너무 초라할 정도로 말입니다.

세월 앞에 사랑은 참으로 무정할 뿐입니다. 

분명 세월이 갈수록 사랑은 더 두터워지고 견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

삶에 쫓기어 살다보면 언제부터인가 가슴속으로 침잠하여 흔적조차 모를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보다는 이해와 배려와 존중의 마음이 더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난 아직도 젊은 날 아무런 조건이나 구속이 필요치 않았던 그 사랑이 그리움은 어떤 이유일까요?

완벽하게 생각했던 계획도 지나보면 참으로 부족했음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누구나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고의적인 의도가 아닌, 몰라서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대부분 관대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상처는 상처고, 잘못은 잘못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에, 어쩌면 삶에는 <만약>이란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만약 그 때 내가 이러이러했으면 좋을 텐데> 하는 후회나 아쉬움을 갖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누구나 지나온 삶은 되돌아가 수정할 능력을 갖지 못하기 아쉬움 때문일 것입니다.

설령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그 당시의 환경은 이미 과거가 되어 흘러가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인 거죠.

사람은 더불어 살기에 대신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병들고 아파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삶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생로병사는 오롯이 혼자서 감내해야 하니까요.

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도 혼자 겪지 않으면 안 되는, 생로병사에는 <만약>은 있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치료를 통해 어느 정도는 치유할 수 있다지만, 그렇다고 처음처럼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죠.

이 문제만큼은 아무리 사랑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가족사이라도, 대신 나서서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더 고통스럽고 아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만의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라면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의 바람이 다르고 뜻이 다르기에, 서로 크든 작든 의견이 갈라져 싸우고 토라지고,

또 화해하고 어루만지면서 화합과 분열을 반복하며 살게 됩니다.

사람은 내가 주는 크기만큼 상대방으로부터 받지 않으면 손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가 준 크기만큼 간섭할지 모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 집은 결코 싸울 일이 없음에도,

자주 큰소리가 나는 것은, 서로 너무 아끼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사람은, 저 홀로도 칭찬과 후회를 반복하며 사는 존재이기에, <만약>이란 가정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방이 들어주지 않으면 상처를 받습니다.

그것도 그 사람에 대한 친밀도나 호감이 강할수록 더 그렇습니다.

내가 원한다고 당연히 해 줘야 하는 당위성이 있는 것도 아님에도 왠지 기대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들 평범하게 사는 것이 비범하게 사는 것보다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약 그 때 내가 이러이러했으면 좋을 텐데.>와 같은 후회나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나온 삶은 되돌아가 반복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설령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지나버린 시간과 환경은 결코 같을 수가 없기에 말입니다.

그럼에도 난 <만약>이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어리석음과 실수에 기인하는 것임에도 내 뜻이 아니 삶이기에 올바른 선택의 기회를 갖고 싶은 것입니다.

물론 똑같은 상황은 두 번 다시 주어지지 않겠지만 내 삶의 굴곡을 지우고 싶은 욕망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이란 불확실한 기대를 갖고 사는 것도 어쩌면 인생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처럼 <만약>은 마음의 치유를 위한 일종의 자기 합리화인지도 모릅니다.



비단채

칼럼·단상·수필·사진·포토에세이·수필가 김진철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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