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다운 건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운 건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질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무리 옳은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참다운 지식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행동하지 않는 지식은 이미 지식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과 같다 할 것이다.

요즘 우리는 <개그 콘서트>의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에서처럼 너무 1등만 기억하고 대우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릴 적 가난을 딛고 자수성가(自手成家)하여 부자가 된 사람이 오히려 올챙이 적 시절을 모르고 가난한 사람을 더 야박하게 대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가난을 경험하지 않은 부자가 진심으로 가난한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마음으로는 이해하나 몸이 이해하지 못하면 오히려 설익은 밥과 같다.

그러므로 낡아버린 걸레처럼 세상의 수많은 때를 경험하지 않은 설익은 지식으로 사람을 재단하거나 서로의 입장을 헤아려서는 안 된다.

우리가 노인을 공경하고, 경력자를 우대하는 것은 이런 경험이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다 알다시피 <걸레>는 더럽고 지저분한 곳을 닦아주는 물건이다.

지금은 걸레라는 별도의 제품이 생산되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걸레는 우리가 일상에서 입던 속옷이나 면으로 만든 옷을 오래입어 낡고 헤어져 못 입게 돼서야 비로소 걸레로 사용할 수 있었다.

옷장 깊숙이 간직하여 명절 때나 입던 비단 바지저고리는 비록 낡아도 걸레로 사용하기가 쉽지 않고 우리와 일상의 삶을 같이한 물을 잘 받아들이는 면과 같은 천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어야 걸레로 쓰일 수 있었다.

보잘것없는 걸레의 쓰임도 이와 같은데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갖고 있어도 장롱 속에 머무르게 해서는 결코 그것을 지식이라 할 수 없다.

지식은 바로 일상의 삶 속에 녹아 활용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그 가치가 있을 것이다. 


비단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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