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보다는 칭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에게는 본디 격이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사람의 격을 구분하게 만든다.

분명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되고 차별받아서도 안 되지만, 실상은 마음으로 그 차별을 인정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의 순수성이나 도움에 대한 차별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차별적 수용 때문이다.

즉, 친분정도나 재산정도, 또는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보는 내 자신의 의식 때문이다.

누군가를 비난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모자람을 탓함이 옳다.

비난하는 사람은 자기 입장을 내세우지만 칭찬하는 사람은 남의 입장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뭇잎은 썩어야만 새로운 싹을 틔우는 토양이 되지만, 썩은 나뭇가지에서 자란 싹은 결코 그 싹을 자라게 할 수 없다.

썩은 나뭇가지를 잘라내지 않으면 도리어 본 줄기를 좀먹어 들어가 결국 나무의 근본인 뿌리마저 병들게 한다.

삶은 결국 나의 그릇의 크기에 따라 칭찬도 되고 비난도 됨을 잊으면 안 된다.

의지가 있는 사람은 한순간의 실패는 진정한 실패가 아니다.

왜냐하면 의지가 있는 사람은 아무리 그 실패가 클지라도 그 실패가 좌절이 아닌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좌절하는 사람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나 의지가 있는 사람은 두려워해야 한다.

좌절한 사람에게는 사람이 없으나, 의지가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항상 누군가 도움을 줄 사람이 나타나는 법이다.

그러므로 실패는 삶의 하나의 과정이지 그 삶의 전부가 아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남은 영원히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자기 자신은 한순간도 속이지 못한다.

남을 속여 얻은 이득이 영원할 것 같지만, 양심이란 그릇에는 항상 오점이 배겨 스스로를 힘들게 할 것이다.

굳이 깨끗한 삶은 아닐지라도 양심에 못이 박혀서는 평생 아픔을 견디며 살아야 할지 모른다.

비난은 당사자에게 직접 행하기보다는 제3자를 매개로하여 간접적으로 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그것을 듣는 대부분의 사람은 불쾌해 한다는 사실이다.

비난보다는 기분 상하지 않을 정도의 충고가 적절하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비난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행해서는 곤란하다.

삶이 아무리 치열한 전쟁일지라도 아군까지 적으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경쟁은 대부분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과 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경쟁은 비난보다는 칭찬을, 경쟁보다는 상생의 방법을 찾아 함께 성장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내가 누구를 이기면 나 역시 언젠가 다른 사람을 통해 뒤쳐지기 마련이다.

적을 만들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친구가 되는 것이라 한다.

친구는 바로 함께 나란히 가는 사람이지 앞뒤로 서열을 정하고 줄을 서는 관계는 아니다.

모정은 끝없는 주기만하는 희생적 사람이라면, 우정은 준만큼 반대급부를 원하는 화합적 사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비난하는 사람보다 칭찬하는 사람이 되어라.

비난은 인간이 가진 다양한 심성에 기인한 일종의 질투라는 감정이 낳은 어그러짐일 것이다.

그리고 전체보다는 일부이고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즉흥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맞은 사람보다 때린 사람이 더 잠을 편히 자지 못하듯, 비난한 사람의 마음은 분명 편치 않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불쑥 먼저 손을 내밀고 그 내민 손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 바로 비난이라는 잘못된 언행이다.

따라서 비난은 적게 하면 할수록 좋다.


비단채

칼럼·단상·포토에세이·저널리스트 김진철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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