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날이 있습니다

강호동 김종민


마음이 번잡해지는 날

무미건조한 바람 

흙모래 일으키는 골목을 서성이면서

내가 자꾸만 작아지다가 

땅으로 꺼질 것만 같은 날이 있습니다


말없이 가버린 시간

절박한 나를 이렇게 두고서 바람은 

저만치 온기를 빼앗아 달아나고

허물어질 것만 같은 담장 

난짝 올라 앉아 있는

늙은 호박의 위태한 엉덩짝에 

내리는 햇살이 수천 개의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찍는 통증 때문에 

뜨거운 호흡이 울컥 넘어 옵니다


틀어박혀 있으면 

속이 타서 죽을 것 같아 길을 나섰건만

새로 포장해서 마르지 않은 길처럼 

발목이 자꾸만 빠져서

갈 곳을 정한 것도 아닌데

가야할 길이 너무 멀어 주저앉고 싶습니다


차라리 태풍이라도 불어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데려다 준다면

낯선 곳에 내려놓아도 원망하지 않을 텐데

다시 돌아올 수 없어도 후회하지 않지만

마음은 두고 갈 거라고 

약속할 일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날이 있습니다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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