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사랑, 그 영원한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다


사랑은 마음에 있는 것으로, 다른 그 누군가에 전해질 때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마치 시인 김춘수님의 <꽃>에서처럼, 누군가가 그 사랑을 받아주었을 때 비로소 사랑이라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내 마음에 있는 사랑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전해져 곱게 쌓여가야 비로소 사랑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랑 역시 사람의 마음이 시키는 일이라 때로는 그림자가 질 수밖에 없다.

처음 사랑을 느꼈을 때와 시간이 흐른 뒤의 감정이 다르고,

함께 있을 때와 떨어져 있을 때의 감정 역시 다르고, 주변 분위기에 따라 느끼는 감정도 다르다.

주려는 사람과 받으려는 사람의 사랑에 대한 마음의 차이도 극복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랑은 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일방적인 감정이라,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지만, 그 사람에게 나는 혐오와 경계의 대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사랑은 감정의 공유이며 나눔인 것이다.

마음을 알아야 그 마음을 이해하고 따르려는 마음이 생기고 믿고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상대방의 마음이 내 마음에 들어올 때 비로소 사랑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는 사람의 사랑이 100이라 할 때, 전해지는 사랑 역시 100일 수 없기에 그 차이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모자라고 넘친다고 해서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사랑은 빚과 다를 바 없다.

왜냐하면 받은 만큼 돌려줄 수도 갚아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의 간극이 있기에, 사랑은 애당초 슬픈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것은 시간이 지나가면 잊어지지만, 어떤 것은 시간이 지나도 잊어지기보다 더 그리워지는 사랑도 있다.

결코 가슴에 남는 사랑은 잊어지는 법이 없다.

우린 누군가를 만나 함께 살지만 반드시 그 사람이 사랑인 것은 아니다.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살지만 진심이 담기지 않았기에 무엇인가 늘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젊었을 때의 사랑은 얼굴에 있고 늙어서의 사랑은 마음에 있다.>는 말에서 보듯이,

사랑 역시도 시간을 두고 어려움을 함께 견디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 익어가는 것이다.

이처럼 진정한 사랑은 시간이 지나야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나는 평생을 통틀어 당신만을 사랑했습니다.” 라는 말을 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면, 아마 그 인생에 더 이상의 행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 역시도 우리의 일상과 그리 다르지 않아 부침이 심하다.

어떤 날은 그저 그립고 또 어떤 날은 공연히 원망스럽다.

그렇기에 평생 사랑할 한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지만, 또 한사람만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사랑의 가치는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하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의 가치를 지키고 살만큼 현실의 삶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얽히고, 만남과 이별사이에서 생기는 갈등, 그리고 오해는 그 사랑을 멀어지게 한다.

그러므로 일상화되지 못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다.

이제는 혼자만의 사랑, 그 영원한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다.


비단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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