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때로는 정말 슬픈 일입니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때로는 정말 슬픈 일입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성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욕망의 출발이기도 합니다.

안다는 건 그것이 나의 의식 안에 머문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때로는 단지 머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은연중에 생각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눈으로 보고, 몸으로 보고, 수많은 되새김을 통해 마음에 담아야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알아갈수록 슬퍼집니다.

함께 한 시간만큼이나 서로에 대한 믿음이나 이해가 더해져야하지만, 우습게도 사람은 으레 그렇거니하고 방치하게 됩니다.

때로는 사랑의 말은 아니더라도 잔소리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합니다.

차라리 아주 모르는 남이면 남이라서 그렇지 하련만은, 늘 눈을 뜨면 마주치는 사람이라 외면하기도 어렵습니다.

서로 사랑이나 관심을 가질 때는 한없이 좋지만 그것이 사라지면 애완동물보다 못한게 사람입니다. 

안다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아는 것일수록 숨기기보다는 자랑하려는 습성이 있어 때로는 서로의 관계를 힘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곁으로는 아니 척하면서도 은연중 서로 비교함으로써 자신의 삶의 질을 저울질합니다.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사람은 늘 머물러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릅니다.

그 사람의 기분의 좋고 나쁨에 따라 다르고, 어떤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느냐에 따라 달리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마치 카멜레온처럼 스스로 변화하기에 사람을 이해하기란 그만큼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처한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매일 같은 날을 살아도 같은 날이 아닙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다르고, 불어오는 바람결이 다르고, 마주치는 나뭇잎들이 다릅니다.

같은 길을 걸어 같은 사람을 만나 같은 일을 해도 어떤 날은 기쁘게 마치지만 어떤 날은 속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아는 것들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하거나 잊혀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 중에 가장 알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외형으로 알 수 있는 얼굴이나 모습이 아닌 마음을 알기란 더더욱 어렵습니다.

마치 시시때때로 변하는 기후와 같아 맞추기가 무척이나 힘듭니다.

그래서 불행하다 느낄 때는 지금 불행해서가 아니라 나를 알아주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면 좋을 터인데 말입니다.

왜 이해하고 양보하려 하지 않을까요?

왜 항상 같은 생각과 같은 행동을 하기를 바랄까요?

왜 함께 함으로 얻은 즐거웠던 순간들을 그리 쉽게 잊는 걸까요?

왜 똑같은 상처임에도 남이 입힌 상처보다 더 아프고 오래가는 걸까요?

사랑한다는 것, 믿는다는 것, 소중하다는 것들이 가슴에 더해질수록, 왜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되는 걸까요?

행복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오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서서히 멀어집니다.

평소 내 편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이용했음을 문득 알게 될 때, 우린 크나큰 배신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남의 입장보다는 내 입장에서 상황을 정리하기 때문입니다.

이익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사람을 알아갈수록 슬퍼질 수밖에 없습니다.

편을 가르는 것은 남이 아닌 자신임을 잊지 마십시오.

 


비단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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