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목소리는 하나다


사람은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한다.

귀에 울려서 듣는 목소리를 자신의 목소리인양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릴까 알고 싶어, 녹음을 해서 듣어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그리 신경 쓰면서 생활하거나 말하지는 않는다.

아마 다소 불만족 스러울지라도, 자신의 귀에는 그리 거슬리지 않기에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소리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나 역시 나의 목소리가 왠지 듣기에 거북스럽다.

이상하리만치 난 또박또박 말하는데도, 상대방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탁성인데다 울림이 커서 그런지 어쩌다 노래라도 부를라치면 왠지 주눅이 들어 망설이게 된다.

박자감도 엉망인데 목소리마저 탁하니 저절로 자신감 마저 잃게 된다.

그래서 어쩌다 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듣기 좋네.>는 빈말에도 하루 온종일 기분이 좋다.

요즘 부쩍 돌아가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아침 일찍 일하려가자 깨우던 헛기침 소리와, 장에 갔다 돌아오시며 술에 취해서 부르시던 옛노랫소리가 생각난다.

그리고 밭갈이하면서 부르시던 농요와, 간간이 일을 재촉하시던 거친 잔소리도 새삼 그립다.

아마 그것은 그 목소리에 사랑하는 자식에 대한 걱정이 스며있어서 그럴 것이다.

목소리에 담긴 그 깊은 정을 그 어찌 잊으랴?


누구나 목소리는 하나다.

그렇기에 목소리는 그 사람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일부러 여러 가지 목소리를 낼 때도 있지만,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 구별할 수 있다.

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의 평소의 얼굴과 모습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다.

하물며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오죽할까?

누군가의 가슴에 닿는 감미로운 목소리가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은 신에게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받은 거와 진배없을 것이다.

목소리가 누군가의 가슴에 닿음은 곧 그 사람을 내편으로 할 수 있다는 긍정정인 신호일 것이다.

사람을 신뢰하게 만드는 저음의 굵직굵직한 목소리,  왠지 기분 좋은 칭찬과 감사의 목소리,   

마치 사랑을 속삭이는 듯 설렘을 주는 목소리, 호통 치는 목소리, 꾸짖는 목소리,

투정부리는 목소리,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

그러나 눈을 감아도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 내 귓가로 잔소리처럼 들려오던 부모님의 목소리일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은 다시 들을 수도 없지만, 짜증 뒤에 밀려오는 감미로운 마음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목소리, 가슴 한구석이 무너지는 목소리  꿈속일지라도 그리움으로 들려오는 목소리,

어쩌면 그것은 결코 잊지 않으려는 나의 간절함인지도 모른다.


비단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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