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처럼 그 여자는 떠났다


선술집 여자가 떠나는 날

늦겨울비가 한차례 쏟아졌다

비 오는 날이나 되어야  왁자했던

빈곤한 선술집이 오늘 부로 파장했다

녹슨 자물쇠가 맥없이 바닥에 나뒹굴고

자바라식 철창이 구겨져 고물상 트럭에 올라앉는다

엉성한 툇마루가 누런색 장판 속에서 발가벗기고

오래 방치 되었던 LPG가스통이 

스라브 지붕위에서 끌려 내려왔다

쪽창에 간신히 매달려있던 붙박이 에어컨을 떼어 내자

떡개비 먼지가 푸르르 달아난다


불구된 의자며 낡은 탁자가 끌려나오고

벽 저 안에서 오랫동안 소박했던 사물들이 하나둘 

햇살 밖으로 부신 눈 찡그리며 들려 나왔다

우악스러운 아귀에 끌려 나온 가재도구가 

함부로 던져지며 서글픈 소리를 내고

그 여자의 은밀했을 공간도 들춰나왔다



벽 저 안이 점점 공허해지자 

그 여자의 흔적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트럭위로 수북하게 쌓인 선술집 잔해들이 

칭칭 밧줄에 묶이고 그 여자의 숨소리였던

희뿌연 간판이 마지막으로 텅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트럭의 시동 거는 소리가 

텅 빈 집안을 휭하니 감곤 골목을 빠져나가자

주인을 떠나보낸 동굴 같은 빈집은 

격자무늬 미닫이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그 여자가 떠나간 골목 끝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지랄 맞게도 천둥번개 한차례 세상을 후려치고 난

겨울 하늘은 무연히 맑다



비단채

칼럼·단상·포토에세이·저널리스트 김진철 웹사이트

    이미지 맵

    스냅 다른 글

    댓글 0

    *

    *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