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보이는 것에 집착한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힘들게 한다.

흔히 사람 사이에 흐르는 관심이나 사랑, 혹은 효나 우정과 같은 것은 평소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것은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인간관계의 연결고리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서로가 바라고 원하는 만큼 알게 하거나 알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명절이나 기념일이 다가오면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대부분 알아서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돈 선물이 최고라지만 그 역시 만족할 수는 없다.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충분하다면 음식을 대접하고 선물을 주고 함께 놀아주는 일정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상대방이 원했을 경우며, 자신이나 상대방의 부담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그만큼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기란 어렵다.

함께한 시간만큼 서로 편해지고 이해할 수 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서로에 대해 익숙해져서인지 어지간한 도움으로는 상대를 감동시키기 어렵다.

늘 내편이라는 인식이 저변에 자리 잡아서인지, 아끼고 사랑하고 지켜주는 일상의 도움들을 쉽게 잊어버린다.

소중함의 크기만큼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 역시 커져야 함에도 우린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늘 아옹다옹하게 되는 것이다.


아는 것이나 보이는 것은 이미 위험하지 않다.

위험은 미리 인지하지 못하게 은밀하고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오는 법이다.

몸에 상처가 생긴 뒤에야 비로소 아픔을 느끼는 것처럼 눈에 보일 때는 이미 늦은 뒤다.

가족이나 친구와 동료에게 순간적으로 화풀이를 한 얼마 못가 후회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늘 마음이 그늘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시간이 늘어간다.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나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딱히 무엇을 후회하거나 아쉬움이 남아서가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의 다짐에서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몰라서, 아니면 알면서 모른 척 했던 것들이 마음의 짐이 되어,

왠지 인생이란 무게에 더해지는 듯하다.

우리는 늘 보이는 것에 집착한다.

그래서 자신의 만족보다 타인의 평가에 더 민감하다.

항상 삶을 같이 하는 사람보다 소위 힘이 있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정작 그 사람이 소중하고 필요하다 느낄 때는 이미 그 사람은 내 곁을 떠나간 뒤다.

이처럼 소중함은 언제나 눈에서 멀어진 뒤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비단채

칼럼·단상·포토에세이·저널리스트 김진철 웹사이트

    이미지 맵

    단상 다른 글

    댓글 0

    *

    *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