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책임보육, 무상보육은 없다


무상보육은 없다.

무상보육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무상보육은 사실상 무상, 즉 무료가 아니었다.

무상이라는 용어가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도록 만든 무상급식을 시작으로 무상보육과 무상의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상제도들이 선거의 공간을 통해서, 혹은 일상의 정치공간을 통해서, 언론을 통해서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서 언급되고 있지만 정작 어디에도 '무상'은 없다.

우리가 무상보육이라고 부르는 제도는 산업화 사회에 급속히 진행된 가족구조의 변화에 따라 대부분의 가정에서 안전하고 건강한 육아를 위해 필요한 보육서비스를 공동구매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대부분의 구매자들은 구매대금을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미리 낸 것이다.

 내가 필요한 때에 내게 꼭 맞는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차곡차곡 구매대금을 지불해온 셈이다.

과도한 비유나 은유에는 필연적인 부작용이 따르는 법이니 난데없는 '보육서비스 공동구매' 얘기는 그 의도가 충분히 전달된 것으로 치고 이쯤에서 그만두도록 하자.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표류하는 무상보육 정책



우리가 무상보육제도라고 알고 있는 보육료지원제도와 가정양육수당제도가 소득기준과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시행된 지 6년차를 맞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민의 세금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이들 제도의 골자는 0세에서 만 5세에 이르기까지 영유아의 보육과 관련하여 부모가 '추가적'인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즉, 영유아보육법에 따른 국공립, 사회복지법인, 법인·단체 등 직장, 가정, 부모협동, 민간어린이집을 이용하는 만 5세 이하 영유아의 경우 가구의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보육료에 대한 지원을 받고 있으며, 그 외에도 장애아 보육료, 다문화 보육료, 방과후 보육료, 시간연장형 보육료 등 다양한 보육지원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집, 유치원, 종일제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가정양육 아동(전 계층 만 5세 이하)에 대해서는 나이에 따라 월 10만 원에서 20만 원까지의 가정양육수당을 현금지급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2014년 예산 기준으로 이들 제도의 운용에 들어간 돈은 보육료 지원에 3조 3천억 원, 가정양육수당 지급에 1조 2천억 원이 투입되었다.

이 금액의 합계는 같은 해 전체 보건복지부의 아동청소년관련 전체 예산의 85%를 넘는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대선 시기에 주요한 후보들이 누구랄 것 없이 경쟁적으로 도입을 약속했던 소위 '무상보육정책'이 시행 3년차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의 보육정책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태로 표류하고 있다.

요란하게 시작한 만큼 전 국민의 기대에 찬 눈길이 쏠리기도 했던 무상보육 정책은 안타깝게도 시행초기부터 해마다 몸살을 앓아왔다.

무상보육제도 전면도입 첫 해였던 작년에는 무상보육을 위한 재정분담율과 그 비용규모의 문제를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면서 소위 '보육대란'에 대한 우려를 키운 바 있다.

결국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어렵사리 추경을 편성하여 작년 한 해를 무사히 넘겼다.

하지만 서울특별시를 비롯하여 그조차도 여의치 않은 지자체의 경우는 지방채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넘김으로써 결국 현 세대 보육의 비용을 다음 세대에 빚으로 떠넘기는 상황을 연출하고 말았다.

 그러더니, 2015년 예산을 마련해야 하는 중앙정부가 누리과정 보육지원 예산을 교육지방자치단체, 즉 시도교육청에 떠넘김으로써 또 다시 지루한 싸움을 예고하였다.

교육부가 신청한 누리과정 예산 2조 2000억 원을 기획재정부가 2015년 예산편성에 반영하지 않은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올해의 무상보육 예산전쟁 2라운드가 시작된 셈이다.

올해의 무상보육 싸움은 그 상대가 작년의 시도지사에서 올해 시도교육감으로 바뀌었을 뿐 작년의 싸움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무상보육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이 싸움의 본질은 정책주체로서의 정부가 마땅히 안고가야 할 책임을 애써 회피하려는 데에 있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위한 돌봄 및 교육에 대한 공공 책임성의 실현'이라는 보육정책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 시행에 필수적인 재정 문제를 정부가 직접 책임지려하지 않고 상대 선수를 바꿔가면서 계속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다.




영유아 부모-취학아동 부모 문제인양 포장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심지어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대립시켜서 수혜집단들 사이에 분란을 유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무상보육 재정책임성의 문제를 보육의 당자사인 영유아의 부모들과 급식의 당사자인 취학아동 부모들 사이에서 해결해야할 문제인양 포장했다.

정작 정부가 져야할 재정책임성을 회피하려는 꼼수를 동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형국이다.

이와 같이 진행되는 박근혜 정부의 분할통치(divide and rule) 정책은 작년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기준보조율의 현실화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던 것과 상당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무상보육, 좀 더 정확하게는 공공책임 보육의 전면적 현실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외면한 채 시민 내부의 균열과 갈등을 유도하고 있는 사이 보육정책의 본질적 목표에 대한 정부와 시민의 문제의식은 서서히 희미해져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도 했었다.

무상보육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일련의 보육비용 공공부담제도는 그 자체로 정책적 목표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보육서비스의 공공책임성 강화를 통해 "영유아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보호 양육"한다는 보육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동원되어야 할 여러 정책적 수단 가운데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결국 보육정책을 둘러싼 우리의 논의가 중앙정부의 책임이냐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냐의 문제나 무상보육이냐 무상급식이냐의 작위적인 논란의 틀에 갇혀 있어서는 곤란하다.

보육 공공성 강화의 문제는 보육서비스의 공공책임성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재원확보방안 마련을 위한 국가의 책임성을 명확히 하는 데서 출발하여야 한다.

그러한 전제조건 아래에서야 비로소, 확보된 재원을 어떠한 정책 프로그램에 투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정책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일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논의의 형성이 가능해질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확대' 논리적 모순 폐기해야


보육공공성 강화를 위해 오랫동안 논의되어왔던 과제들, 즉 국공립 등 공공보육시설 비율 확대, 보육교사 신분 안정화 및 처우 개선, 민간보육시설에 대한 공적통제기전의 강화, 보육 프로그램 자체의 질적 제고 등에 대한 현실적인 논의들은 결국 재원확보방안에 대한 정부차원의 적극적 노력이 전제되어야 가능함은 당연한 일이다.

중앙정부차원에서 재원확보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당위적 명제는 제시하기는 쉬운 일이나 실현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무상보육은 없다'라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명제를 받아들인다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우선 '증세 없는 복지확대'라는 논리적 모순을 폐기해야 한다.

시민들은 '무상보육은 없다'는 점을 이미 경험을 통해 깨닫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더 나은 품질의 공공책임보육 서비스의 구매를 위해 기꺼이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질의 보육서비스에 대한 시민들의 구매와 지불욕구에 이제는 정부가 답할 때다.



비단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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