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행복을 찾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상의 만족된 삶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신의 주도하에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쓰이는 언어 중 좋은 말.

행복·사랑·믿음…

함께 할 때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이러한 말들이 나를 떠나는 순간부터는 항상 무거운 무게로 남겨지게 된다.

슬픔이나 아픔 등이 신기루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인생의 많은 부분들은 항상 양면의 동전처럼 인생을 저울질하기 때문에,

불행이란 마귀에 스스로의 인생이 잡아먹히지 않도록 자신의 신념과 의지하에 둘 수 있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말로만 행복을 찾을 수 없다.

벨기에의 극작가인 메테를링크의 동화 <파랑새>의 주인공인 틸틸과 미틸(일본식, 치르치르와 미치르)이 행복을 찾아준다는 파랑새를 찾아 아주 먼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 집에 돌아와서야 그토록 찾던 파랑새를 만나게 된다는 줄거리처럼, 행복은 먼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 주변에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이 금방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를 찾은 것이 아니다.

행복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과 희생의 산물로 얻어진 것이 행복이다.

주변에 있다고 해서 거져 얻어지는 불로소득이 행복이 아니다. 

행복을 느낄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만 비로서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상대가 나보다 못하다 하여 남겨진 사랑이 그보다 못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의 위치에 만족할까?

사실 욕망의 덩어리인 인간이 만족이란 순간의 위안이겠지만 언제나 나의 요구와, 아내의 요구와, 아이들의 요구와 내가 존재함으로서 야기되는 요구에서 이젠, 삶이 품고 있는 스트레스에 거의 질식할 지경이다.

인간다운 삶이란 어느 곳 어느 장소에서든 사람답게 대접받고 사는 것.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것이 남자의 로망이겠지만 문제는 오늘 이 순간에도, 십년이 지나고 평생이 지났다 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가급적이면 그래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자기 최면이라는 착각에 빠져 살면 조금이라도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나밖에 하지 못하고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 

비록 그 일이 보잘것없는 일이고 주목받지 못하는 일이라 해도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야 말로 자신의 삶을 제데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누가 만들어 줄까?

다름 아닌 본인 즉<자기>다.

자신만의 능력, 자신만의 노력에 따라 만들 수 있다.

물론 <지위가 사람을 만든다>란 말도 있지만 잠시 머무는 자리가 아니고 지키고 가꾸어야 할 자리는 거져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합당한 자리는 결국 자신이 가진 능력과 일치해야만 가능하다.

젊을 때는 자신의 소양과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시키고 채찍질해야 하지만, 중년이 되면 무엇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줄이고,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깨달아 거기에 맞게 일의 크기를 정하는 것이 필요할 듯싶다.

삶을 아등바등 쫓아가기 보다는 자신의 삶을 지배할 수 있도록, 시간과 능력을 조율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리라 본다.

사랑, 행복이라는 허울 좋은포장지를 뜯어 버리고 진정한 의미의 삶의 깊이를 알아가는 삶을 출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비단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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