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있어 자연의 정취는 더 아름답다


바람은 자유다.

거침없이 흐르다 단단한 것을 만나면 거친 소리를 지르고,

나뭇잎 같은 부드러운 것을 만나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지나쳐 간다.

그리고 차가운 겨울의 얼음이나 눈을 만나면, 냉정하게 떠나버린 첫사랑 여인의 한이 되고,

그러다 봄기운이 가득한 꽃들이 활짝 핀 들녘을 지날 때면, 새악시 고운 볼에 피어난 미소처럼 아양을 떨고는 한다.

바람이 있어 자연의 정취는 더 아름답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지르는 소리, 갈대들의 몸짓과,

봄 향기를 풍기는 여린 나뭇잎들의 속살거림과 같은 은유적이고 감상적인 느낌은,

시인의 가슴속을 스치면 아름다운 시로, 음악가의 가슴을 지나치면 아름다운 가사가 되어 오선지를 넘나들고,

영화가나 극작가의 마음을 지나면 연인의 애 끓는 사연이 되어 우리들의 가슴으로 되돌아온다.

또한 바람은 세상을 수많은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주범이다.

고기비늘이 펄떡이는 것 같은 은빛 파도와, 비 그친 하늘가를 쭉 긋는 구름이 되기도 하고, 산허리를 휘감고 도는 물안개가 되었다가도, 어둠이 내린 으슥한 골목길에 스산한 공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멋쟁이 아가씨의 치맛자락을 들치는 심술궂은 치한이 되기도 하고, 첫사랑을 잃은 연인의 한숨이 되기도 한다.

바람은 소망이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 갈 수 없는 곳을 거침없이 대신해 줄 것 같은 희망이다.

사람이 가지 못하는 외딴 섬이나, 깎아질 듯한 절벽, 폭풍우 쏟아지는 바다와, 만년설이 덮인 산봉우리를 바람의 눈으로 보고 싶다.

돈이 없어 못가는 곳, 장막이 가려 못 보는 곳, 시간에 쫓겨 지나친 곳, 이 모두를 바람의 마음으로 느끼고 싶다.

들길을 걷다 만나는 이름모를 들꽃에서, 푸른 하늘을 떠도는 작은 구름 하나에서 조차 바람은 영혼의 울림으로 맞아야 한다.

<내 영혼이 떠나간 뒤에 행복한 너는 나를 잊어도 / 어느 순간 홀로인 듯한 쓸쓸함이 찾아올 거야.

바람이 불어오면 귀 기울려 봐 / 작은 일에 행복하고 괴로워하며 /

고독한 순간들을 그렇게들 살다 갔느니  / 착한 당신 외로워도 바람소리라 생각하지 마.>

조용필의 <바람이 전하는 말>의 노래 가사처럼, 바람이 주는 외로움을 가슴으로 듣고 가슴으로 느껴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이처럼 바람은 나그네의 마음처럼 고독한 마음으로 거친 역경을 헤치고 도전하는 사나이의 불굴의 의지라 할 것이다.

바람은 슬픈 사람들의 노래다.

왠지 행복한 사람은 바람이 주는 쓸쓸함을 모를 것 같다.

아파하고 고독해 하고, 가슴 절절한 사랑에 울어도 보고, 돈 몇 푼에 자존심을 잃어도 보고,

쓴맛단맛 다 본 사람만이 바람이 주는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바람은 가진 것 모두를 훌훌 털어버리고 하얀 백발을 날리며 석양을 등지고 떠나는 나그네의 서사시다.

한 잔의 술로 인생을 노래하고, 한 개비의 담배로 서러움을 뱉어버리고, 한 편의 시로 삶의 흔적을 지우는 사나이의 슬픔이다.



비단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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