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이치는 정해진 것이 없다


자신이 걸어가야 할 인생의 행로를 미리 알면 좋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운명이기 때문에 위험한 행로를 피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해서 이겨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순탄한 길이나 위험이 내재된 길이나 그것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과정의 하나에 불과하다.

예로부터 하늘의 일을 예언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에 따른 신벌이 주어지게 된다 했다.

그것을 극복하여 이기고 나가면 지름길이 생겨 주어진 시간 내에 갈 수 있지만,

그것을 피해 돌아가게 되면 결국 그 사람의 운명이 바뀌게 될 수도 있음이다.

물론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느낌이라면 별 문제가 없지만 잘못하면 그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먼저 뜻을 세우고 행동에 옮겨야지 행동부터 먼저 할 수는 없는 것처럼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떠한 과정이 겪어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안다는 건 오히려 자기의 발전을 후퇴시키는 경우를 낳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는 정해진 것이 없다.

이 말의 뜻은 아무리 정해진 이치라도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똑같은 길을 가더라도 도달하는 시간이 다르고 보고 느끼는 것이 다는 것처럼 사람에 따랄 사물의 가치가 다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삶의 목표가 돈일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명예나 사랑이 될 수도 있다.

태어난 어린아이에게 양육의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하다 해서 바로 어른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에 있어 과정이란 바로 그 사람의 성장과 같다.

잔에 물을 채우기 위해서는 잔에 담긴 물은 먼저 버려야 한다 하지만 그릇을 바꾸면 된다.

이와 같이 인생에 있어 자신에게 주어지는 많은 지식이나 경험 혹은 사랑과 돈과 같은 내용물을 담으려면 먼저 스스로 자신의 그릇을 키워야 한다.

그릇의 크기를 넓히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것들로 채워도 결국 넘쳐나기 마련이다.

때문에 인생에 있어 미리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자신의 운명을 다 담을 수 있는 자신만의 그릇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비단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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