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다스리는 봄


봄은 시작과 희망을 다스리는 말이다.

너무 가깝게 여겨져 반갑고 마음이 따스해서 좋고 전하고자하는 깊이가 마음을 찡하게 하는 말이다.

어쩌면 봄은 기다리게 하는, 기다려도 되는, 고통을 숨겨주는 애틋한 말이기도 하다.

봄은 그 이전에 겨울을 생각하게 한다. 겨울은 모진 고난을 갖다 주는 또는 우리가 지내는 일 중에서도 겨울이란 말은 등골을 차갑게 만든다.

겨울은, 동토는 우리의 생각과 잃어버려서는 안 될 양심과, 펼쳐야할 자유와 가슴 시리게 하는 잃어버림.

함께 있어야할 이별을 뭉쳐 차가운 땅속에 묻어 지키는 일을 한다.

구해 내고자 하면, 지구상의 어느 화폐·금·은으로써도 막을 수 없는, 형언 할 수 없는 정신적 재산을 몽땅 넣어도, 구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저 침묵으로서만 쳐다보게 된다.


누구나 품고 있는 마음을 표출하고 싶지만 그 일이 양심과 자유에 관련되어지는 것이면, 우리가 숨을 쉬고 있으면서도 공기의 고마움을 까맣게 잊고 있듯이, 아주 무감각하게 지내려는 습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아예 짐승이라면 자신의 영역을 표시해두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덤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있다.

사람은 왜 지켜야 하는 일을 미루며 기다리려고 할까?


양심 때문은 아닌 것 같고, 책임감은 더욱 아니며, 비겁함이나 두려움 때문이라 해 둘 수 있을까?

이 들은 모두 살아가는 방법 중에 한가지이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일은 해결되어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꽁지를 내리며 버티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양심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양심은 비겁함도 포함하여야 하는가.

양심은 타의에 의하여 조절 되어야 하는가. 어떤 필요악이 되어 필요할 땐 쓰고, 불필요할 땐 버려야 하는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왜 양심을 지키지 못하는 걸까?


비단채

칼럼·단상·포토에세이·저널리스트 김진철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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