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빚을 가져가는 봄바람


바람을 사랑으로 표현다면 가벼운 느낌이 들까?

일기예보에서 예견된 바람은 그렇게 정답지 못할 것 같다.

그냥 살며시 살답게 다가왔다.

느끼지 못할 사이에 저만치 흘러가버린 바람.

고맙고 정답다.

속삭이듯 다가오는 바람.

무언가 소식을 전해올 것 같은 바람.

따스하게 마음을 열어주는 바람.

이런 바람이 가슴으로 스며드는 것이 더 없이 따사하다.

봄바람은 청춘의 바람이라면 또 다를까. 

애를 태우는 바람, 돌아서면 또 보고 싶은 바람.


다가설 수 없어도 가만히 느낄 수 있어서 좋은, 자고나면 내 곁으로 살랑거리며 다가올 것 같은 바람.

애틋하게도 나의 마음을 전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봄바람은 좋게 다가온다.

봄에는 봄바람이 불어야 한다. 계절에 맞게.

봄은 출발을 준비하는 시기이며, 생명이 돋아나고, 먼 곳을 향할 수 있는 시기이기에 그렇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파고드는 타인에 대한 마음도 솟아나는, 자신을 다스릴 수도 없게 붕 뜬 그런 계절이 봄이다.

이 시기에는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고 지나가는 바람이 무엇을 전해주어도 좋을 것 같다. 

또 봄바람은 살을 애듯 강하게 부는 바람이 아니어서 정겹고, 또한 새 생명을 저장할 수 있도록 암 수의 정을 맺어 주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봄이 생명을 만들면 생명을 깨우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람이 될 것이다.

바람은 자연이 만들어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순수하게 만들어져 생명이 필요로 하는 곳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우리는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기다려야한다.


이 기다림에서 그리운 바람의 속 모습도 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먼곳, 다가갈 수 없는 곳, 그나마 눈물지우며 기다릴 때 그 곳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바람이다.

어쩌면 바람은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기다릴 때는 없다가 그냥 먼 곳을 보고 있으면 흘러 지나간다. 우리의 살아가는 길도 이와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기다리면 먼 곳에 있는 님이 올 것 같기도 하고, 넘어 갔던 해가 거꾸로 솟아 날 것 같기도 하고, 먼 일 갔던 자식들이 반겨 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바라던 일도 성취 될 것만 같은 바람이 살포시 다가올 것 같기도 한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여름의 바람은 좀 거세게 다가와 나의 몸에 힘들 때가 많다.

그래서 굳이 더위를 피하기 위한 바람이면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나의 삶이 이렇게 무거울 때 더 세찬 바람은 나를 더 어렵게 만들지는 않을까.

그래도 불가항력으로 다가오는 바람이면 바로 맞아 싸워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가을의 바람은 마음의 빚을 가져가는 바람이다.

좀 세차게 불어도 지내온 세월만큼 버틸 수 있지 않을까하는, 깡다구로 맞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이를 알기라도 하듯이 높이 솟은 뭉게구름을 가져가는 고마운 바람이다.

겨울에 부는 바람은 내가 가지고 있는 텅 빈 속을 면도날로 긁어 가는 것 같아 심신을 아프게 하는 바람이다.

그 토록 많은, 세찬 바람을 맞아 왔지만 대책을 세울 수 없는 아프기만 한 바람이다.

용서를 모르는 폭군과 같은 바람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쓰러지지 않고 버텨온 현재가 그렇게 또 다른 계급장을 만들어 준다.

바람은 좀 이기적이고 독재자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나 보다.

자신이 만든 생명을 깨우고 일으키고, 모진 칼날을 받게 하고,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때에 따라서는 숨통을 끊어 놓는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서기도 한다.

바람은 자연 현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무슨 바람이든 우리는 피해 갈 수가 없다.


어느 계절에 불어오든 이를 맞는 생명체는 절반의 바람으로 다가올 것이다. 도움을 주든지 피해를 주든지. 우리는 힘이 모자라 불어오는 바람을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빼앗긴 들에 칼바람이 불던 때에도 우리는 바람꽃처럼 꽃을 피워 왔다. 

지금은 아주 답답한 사랑을 받지 못한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

이것은 자연이 만들지 않은 갑갑한 사람들이 도시의 답답한 곳에서 억지로 만들어 지구의 온도 배치와 전혀 상관없이 이기적으로 불어드는 바람이다.

생명의 발생에 전혀 기여하지도 못하는 바람들이 피어난 바람꽃들의 생명을 거두어 가고 있다.

이렇게 탁한 바람을 만든 사람들은 자연의 순리를 배워야 한다.

자신들의 아집만으로는 일굴 수 없는, 자연에서 생겨나는 바람의 과정을 뼛속에 새겨야 한다. 

바람꽃은 바람에 의하여 생명을 틔우고 바람에 의하여 생명을 저버리는 꽃이다. 

우리가 따스한 봄의 사랑으로 바람꽃을 기다릴 때, 극도의 사랑으로 저미는 바람꽃도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다. 


비단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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