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울한 감정·행복이 사라진 감정에 대하여


세상을 파괴하는 원인은 ‘화’



침울한 감정, 행복이 사라진 감정, 불행을 느끼는 감정 즉 ‘도사(dosa)’가 지나치게 강렬해지면 ‘베라(vera)’라는 단계까지 올라가서 가만히 있지 못한다.

한층 강해지면 주위의 것을 파괴하고 마는데, 제일 먼저 파괴하는 것은 자신일 것이다.

자신을 파괴하고, 타인을 파괴해 가고, 세상의 파괴의 원인은 ‘화’가 아닐까.

세상에 있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원천은 애정이며, 창조한 것을 파괴시켜 버리는 것은 화의 감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보편적인 세상에 있는 두 종류의 에너지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감정을 인격화하지 않는 불교




힌두교에서는 ‘브라마는 창조한다. 그리고 시바의 신은 파괴한다.’라며 분명하게 둘로 나눠서 생각하고 있다.

힌두교에서는 인간의 감정과 행동 등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있다.

신의 세계도 둘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인데 기독교 외 다른 종교에서는 애정을 인격화해서 ‘신’이라고 하고, 후회나 질투 그리고 화를 인격화해서 ‘악마’라고 칭한다.

그래서 인간은 ‘신을 숭배해야 하고 악마와 싸워야 한다’`는 형태로 무언가를 머릿속에서 상상해서 이미지를 만들어 행동한다.

따라서 ‘신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악마는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하고 생각하고 철학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감정을 인격화 하면 말로는 이해하기 쉽지만 실천을 하기에는 어렵다.

문제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가 없기에, 인간의 감정을 인격화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인격화해 버리면 인간은 결국 ‘그런 것은 자신과 따로 존재하고 있다. 자신은 유혹받고 있다.

자신은 나쁘지 않다.’하고 남의 탓을 하며 자신은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해 버린다

‘내가 나쁜 게 아니다.’ 라는 태도를 취하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을 회피하려고 하는데 여기에서 큰 잘못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인격화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라.` 고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감정을 인격화하려면 말로는 이해하기 쉽지만, 실천은 불가능해진다.




감정의 척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어떤 인간이라도 “꽃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음식이나 복장의 겨우 문화에 따라 큰 차이가 있고 그 척도가 다르다.

어느 나라에서는 ‘여자는 남에게 몸을 보여서는 안 된다. 몸은 추하기 때문에 감추는 편이 아름답다.’라고 생각하는 문화도 있다.

그 문화에서는 몸의 75% 정도를 밖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람을 보면 모두가 기분이 상한다고 한다.

반대로 ‘몸은 가능하면 보이게 하는 편이 아름답다.’라고 생각하는 문화에서는 ‘아, 정말 아름답다, 미인이다, 멋있다.’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중동에서는 여성이 검은 차도르를 뒤집어쓰고 얼굴을 감춘 채 손의 일부만 밖으로 노출시킬 수 있다.

금목걸이나 귀걸이 등으로 치장을 하고 있어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손만 보고 중동의 남자들은 “아, 아름다운 여자다.”, “섹시하다.”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들은 할머니인지 어린 소녀인지 전혀 알 수 없을 수도 있다.

우리들의 문화에서 보면 “대체 무엇을 위해 아름답게 태어난 것일까.”라고 의아해 하겠지만,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음식이나 복장의 경우 문화에 따라 큰 차이가 있고 그 척도가 다르다는 뜻이다.



비단채

칼럼·단상·포토에세이·저널리스트 김진철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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