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자신의 몫이지만 용서는 타인의 몫이다


사과는 자신의 몫이지만 용서는 타인의 몫이다.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하지 않는 사람은 단지 짐승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사과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중에 나에게 도움이 될  한 윗사람이거나 능력을 가지 사람도 아닌데 왜 내가 굳이 사과까지 하느냐고 강변한다.

그러나 <사과나 용서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과나 용서를 통해 내 영혼이 맑아지고 또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상대방이 용서해주지 않더라도 사과라는 행위를 통해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자기발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삶이라는 터전을 통해 더하고 빼는 과정을 겪어야 올바른 가치관이 생기는 것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잘못했는지조차 모른다면 그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알아야 주어진 삶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이 즐거우려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행할 정도라면, 그 사람은 이미 자아를 상실한 좀비에 불과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현실이란 삶에 속박당해 왜 사는지 그 의미조차 잃고 살 때가 많다.

당연히 도와주고 함께 해야 할 자리에도 당장의 이익을 계산하게 되는 것이다.

어려움조차 삶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사과는 말과 행동에 진심이 담겨야 한다.

찾아갈 때는 무엇인가 아쉬운 것이 있어서임은 불문가지다.

마찬가지로 사과의 당위성 역시 그 사람이 내게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한 잘못을 충분히 알기에 사과할 것이라 믿고 있다가 아무렇지 않게 여기면 오히려 내가 당황스럽다.

결국 누가 문제인지 냉정하게 평가해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상대방에 대한 예절을 자칫 잊게 하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익숙함이다.

익숙함은 잘 아는 상태를 말하는데, 우린 때로 그것을 친분이나 우정의 척도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익숙하다 해서 반드시 친한 사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익숙함으로 관심이 줄어들고 지나치게 막 대할 수 있음으로, 사실 익숙하다는 것은 어쩌면 무서운 일이다.

그러므로 사과와 용서는 바로 인간관계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담긴 사과에 화를 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혹자 거친 말로 화를 내도 한순간일 뿐, 그 순간이 지나면 도리어 친해지는 경우가 많다.

맞은 사람은 편히 자도 때린 사람은 편히 못 잔다는 말처럼, 진심으로 사과했으면 나중은 상대방의 몫인 것이다.

너무 자신에게 한정 짓지 말아야 한다.

원망은 너무 자신에 대한 입장이 강해서 생기는 마음의 병인지도 모른다.

자신보다 조금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차분하게 헤아려보면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많은데 말이다.

너무 자신의 입장과 생각이 개입되어 그렇다.

그러므로 사과나 용서 역시 상대방의 입장에서 하는 것이다.

자신을 잊지 않으면 족하다.


비단채

칼럼·단상·포토에세이·저널리스트 김진철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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